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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업 간 추격의 경제학(7)

by Diligejy 2015. 12. 6.

p.238~240

기본적으로 특정 산업에서의 혁신을 위해서는 특정 분야를 넘어선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능력이 보다 중요하다. 이를 기술 융합 현상이라고 부른다. 기술적 다각화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첫째, 기술 다각화가 제품 다각화보다 일반적으로 범위가 넓다. 즉,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특성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큰 데,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기술 탐색과 활용이 제품 개발의 선결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 다각화를 통해서만 제품 및 시장 다각화가 가능하다.

 

둘째, 기업의 기술 다각화의 윤곽은 안정적이고 기업마다 다르며 동시에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간에는 상당히 비슷한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특성은 경쟁기업보다 협소한 기술 영역에 한정된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경쟁력 약화와 기술능력의 상대적인 저위를 맞이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기술 영역의 확대는 사실상 단기적인 이윤 추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장기적으로 의도적인 방식에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특허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에 따르면 대규모 혁신기업은 대부분의 기술 영역으로 다각화되어 있고 지속적으로 혁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 세계 400여 개의 대기업을 분석한 파텔과 파빗에 따르면 기업-특수적인 기술역량과 관련하여 기술혁신자체는 핵심 제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만 이를 위한 기술활동은 그보다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폭넓은 기술 분포를 통해 기업 특수적인 기술 역량의 축적은 복잡해진다. 그랜드스트랜드, 파텔, 파빗도 기술 역량의 넓은 분포에 주목하면서 다기술 기업을 분석한다. 기술 선진국의 대기업은 기술 다각화가 널리 확산되었고 기술적 다각화  즉, 다양한 기술 습득과 활용을 통해서만 혁신기업으로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p.260~261

첫째, 조선 산업의 기술 체제는 높은 기술적 예측 가능성을 가진다. 조선 산업은 제품 혁신보다 공정 혁신이 크게 중요시 되는 성숙기 산업이라는 점에서 기술 발전의 예측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벌크선에서 컨테이너선, 소형 유조선에서 초대형 유조선으로 이르는 기술 패러다임을 보아도 역시 파괴적인 기술혁신보다는 점진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단계별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조선 산업은 낮은 기술혁신 빈도를 보인다. 조선 산업은 실제 및 건조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나 IT 산업에 비하면 기술 주기가 훨씬 길고 혁신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후발추격자는 자체적 내부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기회가 있다.

 

셋째, 조선 산업의 기술 체제는 높은 외부 지식 기반 접근 가능성을 보인다. 선박의 핵심 설계 및 건조 분야의 원천 기술 면에서는 독보적이나 이를 활용할 건조력이 미비했던 유럽 국가들은 개방적인 기술 이전 및 라이센싱을 통해 원천 기술에의 접근을 허용하였고, 각종 자문과 훈련을 제공하였다. 스웨덴의 수치 제어 프로그램인 바이킹 시스템, 노르웨이의 조선 전용 CAD/CAM 시스템인 오토콘 도입, 프랑스의 Gaz Transport의 LNG선 건조기술 도입 사례 등이 이를 증명한다.

 

p.263~264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1위가 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계기는 LNG선 시장에서의 새로운 기술 표준 도입을 통한 기술 비약과 경로 개척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LNG선 시장에서 모스형 화물창 기술을 채택하여 사용하던 일본에 맞서기 위해 이를 대체하는 멤브레인 화물창 기술을 새롭게 도입하고 최초로 상용화 성공을 거둔 것이 한국 조선 산업을 지금의 위치에 서게 만든 것이다.

 

즉, 한국 조선 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LNG선 건조에 뛰어들기 이전까지는 전형적인 경로추종형 추격의 모습을 보였다. 추격 초반인 70년대에는 전면적인 해외 기술 도입을 통해 기존의 선진 기술 지식을 체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80년대가 되자 기존의 조선 기술을 상당 부분 체화한 한국 기업은 공정 기술의 집중적 개선을 통해 건조 효율성을 제고하고 기자재의 수입을 대체하기 위한 부품 국산화에 착수하는 등 비용우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철저히 기존에 받아들인 조선 기술을 습득하고 체화하며 모방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선발주자의 기술 경로를 그대로 추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기존의 기술 경로를 그대로 추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기술 경로를 선도적으로 개척해 비약적인 기술추격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LNG 선박 분야로의 진출이다. 만일 한국이 LNG선을 건조하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그대로 도입하고 모방했다면, 한국 기업의 관련 기술 수준이 일본을 능가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일본이 채택하고 있던 기술 표준인 모스형 화물창이 아니라 당시 상용화되지 않았던 멤브레인 화물창을 채택하였고, 이는 한국 기업이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 기존의 기술 경로를 추종하기보다 새로운 기술 경로를 개척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p.264~265

조선 산업은 상당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기술 산업이지만, 제약 산업, 반도체 산업 또는 소프트웨어 산업 등에서 관찰되는 강력한 지적재산권 관련 제도는 관찰되지 않는다. 제약, 반도체,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우 초기 투자와 고정비용이 굉장히 높은 반면 생산에 소용되는 변동비용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장을 통해 선발 투자 요인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선 산업의 경우 단일 제품의 단가가 천문학적로 책정되고 개별 제품들이 각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주문 제작되며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 상당 부분 인력에 체화되고 암묵적이라는 점에서 이런 제도가 발달하지 않았다. 물론 중요한 원천기술은 특허로 보호되지만 이러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유럽 회사들은 상선 건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후발기업이 자금력만 있다면 이러한 기술을 라이선스하여 상용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조선산업의 상황이다. 이처럼 후발기업의 기술 학습을 제약하는 제도적인 규제가 미약하다는 점에서 조선 산업은 일반적으로 기술추격에 굉장히 우호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p.270

대형 선박은 수주에서 인도까지 평균 2년이 소요되는데 이 기간의 절반 가량은 설계에 소요된다. 선주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 설계의 유연성은 제품을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한 국내 기업 임원의 의견을 따르면 설계는 전체 건조원가의 15퍼센트를 차지하지만, 통상적인 중요도로 보면 85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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