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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장자 나를 깨우다(2)

by Diligejy 2015. 12. 16.

p.153

우선 '19'라는 숫자 자체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9'는 '10+9'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10'은 완전함을, '9'는 오래됨(久)를 의미한다. 따라서 '19년'은 아주 오랜 세월을 가리킨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해체하고도 칼날이 상하지 않았다는 말은, 인생살이가 아무리 복잡하고 힘들어도 마음이 상하거나 어지러워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p.155

삶의 고단함은 세상과의 '부딪침'에 정비례한다. 사람과 부딪치고, 욕심과 부딪치고, 아집과 부딪치고, 잡념과 부딪치고..... 세상과의 부딪침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은 더 상처받고 고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삶의 통찰력을 길러 '결'을 찾아내고 마음 비움을 실천하여 마음의 두께를 얇게 하자. 그럴수록 삶은 더 여유롭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p.192

'현해'(懸解)는 말 그대로 거꾸로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풀려난다는 의미다. 거꾸로 매달려 있으면 고통스럽다. 매 순간이 고통이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장자는 그것을 물(物)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개 사람들은 삶을 얻으면 기뻐하고 죽음을 만나면 슬퍼한다. 삶과 죽음을 차별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집착, 무언가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고정관념과 집착 그리고 강박관념이 바로 '물(物)'의 실체다. 고정관념과 집착에서 벗어나, 주어지는 상황과 조건을 편안히 받아들이면 우리의 마음에 슬픔이나 즐거움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 상태가 바로 '현해'인 것이다

 

p.215

꿈에 즐겁게 술을 마시던 자가 아침에 깨어나 슬피 울기도 하고, 꿈에 슬피 울던 자가 아침에 일어나 즐겁게 사냥을 가기도 한다.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심지어 꿈속에서 또 꿈을 꾸며 그 꿈을 해몽하기도 한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난 이후에야 그것이 꿈인 줄 알게 된다. 크게 깨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커다란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깨어 있는 것처럼 여기고 우쭐거리며 아는 체를 한다. 임금이라 하여 우러러 받들기도 하고, 목동이라 하여 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으로 고루한 짓들이다. (제물론)

 

p.263

'외화'와 '내불화'는 외견상 모순되는 듯하지만 결국 서로 합일하게 된다. '외화'는 외부 환경을 순순히 따르는 것이고, 환경을 순순히 따르면 외물(外物)과의 마찰이 줄어들 것이며, 외물과의 마찰이 줄어들면 내면의 평정심이 유지된다. 내면의 평정심은 곧 '내불화'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반대로 '내불화' 즉 부동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은 외물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고 외물의 영향에서 자유로우면 외물과의 마찰이 생겨나지 않게 된다. 이는 곧 자유자재로 외화(外化)를 실천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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