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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by Diligejy 2023. 1. 17.

p.6

전쟁 이전의 정치체제하에서 국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은 기존의 정당, 귀족원, 추밀원 등 여러 정치세력의 벽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사태가 벌어졌습니까?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이 기존 정치체제하에서는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왠지 개혁을 추진할 것만 같은' 군부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졌습니다. 육군의 개혁안에는 자작농 육성, 공장법 제정, 농촌 금융기관 개선 등 훌륭한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p.24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라면 전쟁으로 가는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각자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9.11 테러 당시 미국은 전쟁에서 이긴다는 자세보다 악독한 범죄자를 잡는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싸움의 상대를 전쟁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p.38-39

'일본국헌법은 GHQ가 만든 것, 미국이 강요한 헌법'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일본국헌법이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과 같은 구조라는 것, 그리고 숨낳은 사람이 죽은 뒤에 국가는 새로운 사회계약, 즉 넓은 의미로 헌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p.44

도쿄대학 법학부의 하세베 야스오 교수의 <헌법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눈이 확 뜨였습니다. 정말 놀랍고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세베 교수는 이 책에서 루소의 <전쟁 및 전쟁상태론>이라는 논문에 주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주권 사회계약에 대한 공격, 다시 말해 상대국의 헌법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p.55

카는 왜 베르사유체제가 20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위기의 20년>을 집필한 것입니다. 1919년에 파리강화회의가 열렸고 그 이듬해인 1920년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이 중심이 돼 국제연맹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미국은 상원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지만요. 그러나 평화는 짧았습니다. 카에게 '국제연맹에 의한 평화는 왜 실패했는가'하는 질문은 자신의 존재 의의가 걸린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카는 외교관으로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영국의 외무차관 찰스 하딩이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할 외무부 참석자 열여덟 명을 뽑았는데, 그 중에 카가 포함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카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신흥국가위원회 회의석상에서 카는 약소국과 패전국이 부당하게 취급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1914년 8월부터 유럽과 아시아에서 시작된 전쟁의 경과도 잘 모르고, 유럽이나 서아시아의 지리를 알기는 커녕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윌슨 대통령이 그 지역 사람에게는 사활이 걸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윌슨의 방식으로 전쟁의 상처를 입고 갈라진 유럽 사회가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카는 <위기의 20년>에서 "정책이 윤리적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지, 정책에서 윤리적 원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확신하는 유토피아적 정치가가 미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회상합니다. 

 

p.56

교전국 전사자 수 1,000만 명, 서부전선에 거의 지구 하나 바퀴를 돌 만큼 긴 참호를 구축했던 제1차 세계대전. 비참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국제연맹을 만들었는데, 왜 불과 20년 만에 파탄이 나고 말았을까요? 카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좀 더 신속하게 응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국의 지도층 혹은 지식인은 무척 난처했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위기의 20년>이 출간됐는데, 막 전쟁이 시작된 중요한 시기에 영국 정부와 국민에게 찬물을 끼얹는 내용이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에 대한 카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리석음 혹은 사악함 때문에 사람들이 올바른 원리를 적용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원리 그 자체가 틀렸거나 적용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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