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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by Diligejy 2024. 1. 5.

 

 

p.26~27

의사가 환자에게 '위험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의 관찰을 근거로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의 통계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기상학이든 생물학이든 똑같이 적용된다. 일기 예보를 하는 사람이 내일 비 올 확률이 75퍼센트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 숫자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한 가장 그럴듯한 추측임을 안다. 막상 내일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졸리도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눈에 졸리는 유방암에 걸리지 않을 실질적 가능성이 존재하는데도 과도한 수술의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과학 및 건강 분야 필진 세 사람이 지적했듯이, 일부 의사들은 졸리가 수술 사실을 "공개한 것이 일부 여성들에게 오해를 일으켜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유방 제거 수술의] 유행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졸리와 같은 입장인 여성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명망 높은 외과 의사 수전 러브는 "어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정상적인 신체 부위를 잘라내야 한다면 그건 대단히 야만적인 일이지요."라고 말했다. 물론 자신에게 BRCA1 변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 사람 개인의 결정이며 아무도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로 한 졸리의 선택은 곡ㄷ바로 질병의 유전적 요인이라는 사안에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DNA와 그 작동방식에 관해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미래에 맞닥뜨릴 몇몇 중요한 결정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p.33-34

후성유전이란 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즉 발현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DNA는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전등 스위치처럼 작동한다고 말이다. 아니, 조명을 약간만 밝히거나 적당한 밝기로 맞추거나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도 조절할 수 있는 조광기처럼 작동한다고 보는 게 더 낫겠다. 어떤 DNA  분절(유전자)이 얼마나 활성화되는가는 그 분절의 후성유전적 상태에 달려 있고, 그 상태는 그 분절이 처한 맥락 등의 요인에 달려 있다.

 

이런 정의는 유전자 및 유전자의 작용을 바라보던 관점에 상당히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당신의 눈이 파란 것은 파란 눈과 관련된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유방암이 발병할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러나 후성유전의 정의에 따라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을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 유전자의 활동 정도가 다양한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DNA가 무엇을 하는지다.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질' 수 있다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유전자 를 가진 것은 열쇠 하나를 가진 것과 비슷한 일이며, 딱 맞는 열쇠구멍이 없다면 그 열쇠는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p.34-35

당신이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에서 당신의 유전자가 무엇을 하는지로 초점을 옮기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건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일이다. 우리가 현재의 우리인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들 때문이라는 관념은 최소한 우리의 표현형 중 일부는 우리가 수정될 때 이미 결정되었다는 생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후성유전적 과정들이 유전자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경험과 DNA가 함께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만들었으므로, 우리가 지닌 특징이 미리 정해진 것일 수 없음을 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맥락, 즉 어떻게 양육되었느냐가 확실히 중요하다. 이는 암 연구자들이 암 발병 사례의 대다수가 환경이나 생활 방식 요인과 관련되었으리라고 믿는 이유 중 하나다.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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