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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안티프래질(2)

by Diligejy 2015. 11. 18.

p.86

대기업과 정부는 정보가 반발력과 정보를 통제하려는 사람을 통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기업이나 빚에 허덕이는 정부가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그들이 취약하며 운이 다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보는 무자비하다.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하면, 투자자들은 달아나고 죽음의 악순환을 일으키면서 결국 뱅크런 사태까지 초래한다.

 

p.92

복잡한 세상에서는 '원인Cause'이라는 단어의 개념 자체가 수수께끼다. 포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실제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이는 내가 무엇인가에 대한 원인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신문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p.97

복잡계 이론가인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man은 표 2에 나오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세계를 구분하기 위해 균형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사용한다. 기계적 형태 혹은 단순계에서 균형은 관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유기적 형태 혹은 복잡계에서 균형은 죽음과 함께 발생한다.

 

p.116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는 한 실패는 더 큰 재앙을 예방한다.

 

p.119

나는 실패를 한 후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그 이유를 찾기보다,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실패를 활용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당혹스럽고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는 사람을 패배자loser로 규정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나쁜 상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인다. 실패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믿음이 더 간다. 또 실패(똑같은 실패는 아니다)를 여러 번 겪어본 사람은 실패를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믿음이 간다.

 

p.121

정부는 이런 모델을 붕괴시키면서 대기업에게 구제금융이라느 혜택을 제공한다. 다른 기업에 미치는 전염성을 막기 위해 대기업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구제금융은 리스크 수용의 건전성(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기업으로 프래질을 이전하는 것)에 역행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구제금융이 어느 누구도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마저 몰락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지속적인 실패만이 시스템을 보존해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대부분의 정부 개입과 사회 정책은 약한 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기존 세력을 강화시켜준다.

 

p.128

나의 꿈(해법)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국가가 기업가의 날을 정하는 것이다.

 

여러분들 대부분이 실패하고 존경받지 못하고 가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경제를 발전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은혜를 입고 있다. 여러분들은 안티프래질의 원천이다. 국가가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p.137

정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안정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없기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의미다.

 

p.171

근대는 선정적인 것과 적절한 것 사이의 차이를 넓혀 놓았다. 자연환경에서 선정적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가십이나 개인적 에피소드처럼 본질적으로 사람과 관련한 것을 언론에 의존하면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다.

 

실제로 안티프래질, 자기조직화, 자연 치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과거에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믿음을 가지고 이런 특징을 숭배했다. 인간은 발전을 신의 섭리로 여겼다. 또한 이런 신의 섭리가 없었더라면 스스로 자신을 보살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하게 만드는 이는 하버드 졸업장을 받은 선장이 아니라 바로 신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국민국가의 등장은 발전이었다. 신의 섭리에서 인간 자신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국민국가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이 저지르는 실패의 집중과 확대에 관한 이야기다. 근대는 폭력에 대한 국가 독점으로 시작해 재정적 무책임에 대한 국가 독점으로 끝을 맺는다.

 

p.198

당신이 주식 가격이나 장인이 경영하는 공장의 비료 판매량, 혹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물가상승률에 관한 연간 데이터를 살펴본다고 하자. 그리고 그 연간 데이터의 신호 대 잡음의 비율이 약 1대 1(절반은 신호이고 절반은 잡음이다)이라고 해보자. 이것은 변화의 절반은 개선 혹은 퇴보를 의미하며, 나머지 절반은 무작위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비율은 당신이 연간 데이터에서 얻은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데이터를 하루 단위로 살펴보면 95%는 잡음이고 나머지 5%가 신호다. 그리고 뉴스와 시장 가격의 변화에 몰입하는 사람들처럼 시간별 데이터를 살펴보면, 잡음 대 시간의 비율은 99.5% 대 0.5%가 된다. 신호보다는 잡음이 200배나 더 많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뉴스를 듣는 사람이 훨씬 더 속기 쉬운 사람이라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p.200

정보의 공급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제한하는 것이 개입을 완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이런 방법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수록 상황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의원성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은 더 많은 데이터를 의미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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