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0
산업화되고 강대해진 중국이 1945년 이래 미국이 그러했듯 동남아시아에 우호적으로 대할 것인가? 싱가포르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같은 나라들도 그렇다. 우리는 이미 더욱 자신만만하여 스스럼없이 강한 태도를 취하는 중국을 보고 있다.
미국의 우려는 중국이 미국의 주도적 지위에 도전할 수 있게 될 경우 어떤 성격의 세계를 미국이 직면하게 될 것인가에 있다. 아시아의 많은 중소 국가들 역시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예전 중국이 수 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제왕적 지위를 다시 차지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과거와 같이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하는 속국으로 취급될까 불안해한다.
중국인들은 그들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우리 싱가포르인들이 그들을 좀 더 존중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말은 "나라가 크든 작든 다 평등하다. 우리는 패권국이 아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중국인들이 싫어하는 일을 우리가 하면 우리더러 13억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불평한다. 알아서 분수에 맞게 처신하라는 경고인 셈이다.
p.44
중국은 그 거대한 시장과 계속 성장하는 구매력을 바탕으로 동남아 국가들을 자국의 경제 체제 안으로 흡수하고 있다. ㅇ리본과 한국 역시 어쩔 수 없이 그 체제 안으로 흡수될 것이다. 중국은 무력을 쓸 필요 없이 각국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웃 나라들은 중국의 인질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관여해 주기를 바란다. 미국은 중국이 이 지역을 자국의 중력 궤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하기 훨씬 전인 30년 전에 동남아시아에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했어야 옳았다. 그랬더라면 미국의 구매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 있을 것이고 모든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에 의존하는 대신 미국 경제에 연결되었을 것이다. 경제가 기저의 흐름을 결정한다. 계속 커져가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과 맞서 싸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중국은 경제를 통한 영향력 확대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지정학적 의미에서 중국은 현재 대외 정책에서 무력이 아닌 외교적 수단을 이용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p.45~46
중국이 절대치로 본 GDP 통계로는 미국을 결국 따라잡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교환과 경쟁을 가로막는 중국 문화 때문에 창의력 분야에서는 미국을 당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보다 인구가 네 배나 더 많은 나라가, 따라서 인재도 네 배나 더 많다고 봐야 할 나라가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해내지 못하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있겠는가?
중국인이 그 문화적 족쇄를 스스로 풀 수 있을까? 그러려면 5천 년 중국 역사의 전통과 맞서야 할 것이다. 중앙 정부가 강력하면 이 나라는 융성한다. 그러나 중앙이 허약하면 황제는 멀고 산은 높아 첩첩 가로막혀 있으니 성과 현에는 소황제들이 할거한다. 이게 중국의 문화유산이다. 중국의 전통은 획일적 관료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중국 지도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부패로 체제가 좀먹어 들어가는 것과 이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염증이다. 이 문제가 언제 폭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p.54
나는 다른 나라에 그 나라의 과거와는 완전히 단절되고 생소한 어떤 기준을 도입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5천 년 역사를 통해 오로지 황제라는 권위를 내세워 통치하면서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의 머리를 무수히 베었지만 민의를 알기 위해 머릿수를 센 적은 없는 중국을 보고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어디든 실시간 통신이 가능한 시대에 야만적 행위를 하면서 내부 문제라며 넘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중국 지도자들도 인권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세계적으로 존중을 받으려면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도 존중받을 만한 위상을 유지해야 하며 그러려면 더 이상 자국민을 야만적 방식으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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