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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by Diligejy 202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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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17

이번에는 이렇게 질문해보자. '좋아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지금 여유로운 국가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여유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는 이제까지처럼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좋아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단정할 수 있을까? 

 

토요일에 텔레비전을 틀면 일요일에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를 쏟아 부을 만한 오락거리를 선전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곤 한다. 그러면 방송을 보고 방송에서 추천하는 장소에 가서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한 셈일까? 그 일이 '바라고는 있었지만 이룰 수는 없었던' 것일까?

 

'좋아하는 일'이라는 표현에서 취미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취미란 무엇일까? 사전에 의하면, 취미는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과 재미를 느끼는가 하는 그 사람이 지닌 감각의 존재 양태"를 의미한다. 

 

p.17-19

몇 년 전 타계한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는 20세기 중반인 1958년에 쓴 <풍요한 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의식할 수 없게 되었다. 광고와 세일즈맨의 말에 끌려서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이 확실해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광고회사에 의해 배우는 이런 상황은 19세기 초반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경제는 소비자의 수요에 의해 움직이고 그래야 한다는 '소비자 주권'이라는 개념이 경제학을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은 경제학자들에게 강하게 부정된다고 갤브레이스는 말했다. 즉,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사실(수요)이 처음에 있었고, 그것을 생산자가 알아내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공급)이야말로 경제의 기초라고 여겼다는 말이다.

 

갤브레이스는 이런 생각이 경제학자의 확신에 지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가 말하는 '풍요한 사회', 즉 고도 소비사회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앞선다. 아니, 오히려 공급하는 쪽이 수요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라고 권해서 그것을 사게끔 만드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갤브레이스의 주장은 누가 봐도 사실이다. 소비자 중에 욕망이 자유롭게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욕망은 생산에 의존한다. 생산은 생산에 의해 충족되어야 할 욕망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이 소비자가 자유롭게 결정한 욕망에 따른다고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란 생산자가 자신의 편의에 의해 광고나 그 밖의 수단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일요일에 할 일을 토요일에 텔레비전에서 알려주겠는가? 왜 취미를 카탈로그에서 고르는 것일까?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풍요한 사회', 즉 여유 있는 사회에서 여유는 여유를 얻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은 '바라고는 있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다. 애초에 우리에게는 여유를 얻은 순간 이루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p.20-21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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