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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자기발견108

놓치지 마. 지금을. 순간 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 집의 승리를 가능케 한다. 순간을 놓친다는 건 전체를 잃고 패배한다는 걸 의미한다. [미생] 긴장했었다. 사랑니를 뽑기 위해 휴가를 냈고, 오늘 하루를 날릴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다가오니 너무 두려웠다. 마취를 하고 검사를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1년전에 오른쪽 사랑니를 뺄 때와 달리 지금은 왼쪽 사랑니가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기에 동의서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무리 잘 뽑는 선생님께 갔다고 하지만 혹시나 신경손상의 위험이 있진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했는데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뽑는 그 순간만은 선생님이나 나나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별 걱정 없을거라며 안심시켜주셨지만 그럼에도 사랑니를 뽑는다는 위험이 변하진 않았다. 스그.. 2019. 12. 27.
12월 26일. 이 날부터였어. 매년 잊히지 않는 기억. 3년 전 12월 26일 내 첫 인턴날. 즐겁게 새벽까지 카톡으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내고 새벽늦게 잠든 나. 그리고 26일 아침 8시 쌓여있는 부재중전화와 문자메시지. 직감했다. 뭔가 잘못됐다. 맞았다. 잘못되었다.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지. 음주운전자 덕에 삶이 으스러졌으니까.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전화위복일지도 모르겠다. 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독립하고 어떻게든 발판을 만들려 노력했으니까. 근데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잘 버텨왔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잘 안하는 편인데, 이건 칭찬해줄만 하다. 죽지 않고 버텨왔으니까. 앞으로도 죽지 말고 버티자. 늘 그래왔듯이. 2019. 12. 26.
코딩보다 휴식이 중요해 25일 크리스마스다. 전날에도 복싱 2시간에 늦게까지 일을 한지라 크리스마스란 건 안중에도 없었고 쉬는 게 중요한 날이었다. 그런데 왠걸? 8시에 눈이 떠졌다. 어떻게 평소보다 더 일찍 그것도 퀄리티 안좋게 깨냐고ㅠㅠㅠ 정말 울고 싶었다. 그래도 하루를 망칠 순 없으니 뭔가를 해야하긴 했다. scrapy를 연습했다. 집중이 별로 되질 않아서 얼마 하진 못했다. 이모가 보내준 과자를 우걱우걱 먹었다. 살찐단 걸 알면서도 우걱우걱 먹었다. 이거 빼려면 고생해야할텐데... 뒷생각 안하고 먹었다. https://www.facebook.com/funfunfunVideoo/videos/1354829728030335/UzpfSTEwMDAxNjEyNjM2OTA3Njo1ODI0NDQ1NjU2MzY0MTc/?id=1000.. 2019. 12. 25.
크리스마스와 다음 날 그리고 사랑니 1. 보통 크리스마스 전날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서 기념한다. 그럼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뭐라고 할까? 모르겠다. 그냥 26일이겠지. 3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두렵다. 트라우마라는 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 존재인가보다. 그래도 죽지 않고 버텼다. 아직도 완전히 자리잡지는 못하고 개판이긴 하지만 취업해서 경제적 여건도 예전보단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루하루 힘들었다. 물론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끌고오는데 상처를 많이 입었고 볼 꼴 못 볼꼴을 너무 많이 봐버렸다. 지금 일에 몰두하는 건 그랬던 과거의 반작용이 아닐까? 재미있어서 하고 있다고 말하곤 있지만, 중독되지 않으면 안되니까 중독되는게 아닐까? 내 마음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2. 27일에 사랑.. 2019. 12. 25.
상처와 분노 화난 영상을 찾아야 해서 찾고 있는데, 유투브에 있는 대부분의 분노 영상은 내 편향일 수 있지만, 가족관계에서 나오는 듯 보인다. 볼 때마다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 해서 고통스럽다. https://www.youtube.com/watch?v=9ACI7wQsSMg 찾고 있는 영상들이 내면아이를 건드린 듯 했다. 마음이 슬프다고 난리다. 마음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살고 있다. 회사에 가서 혹은 모임에 가면 많이 웃는 편이지만, 속에 있는 아이는 울보라 많이 우는 편이다. 어제 모임에서 친구 하나가 물었다. "진영이형, 형은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에요?"라고. 나는 답했다.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차가운 사람은 싫더라고" 사실 이 말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의미했다. (화목하다는 건 여러 .. 2019. 12. 23.
병우에게 "병우(가명)야 쿠폰 모으러가자" "그래 진영아" 우리가 살던 곳 근처에 새로운 PC방에서 집집마다 1시간 쿠폰을 뿌렸다. 우린 그걸 모으러 다녔다. 대교에서 학습지 홍보차원에서 홍보물과 샤프를 집집마다 뿌렸는데 그것도 모으고 다녔다. 우리가 왜 친해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친할 뿐이다. 너무 당연한 공리니까. 따지고보면 우린 동창도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다른곳을 나왔으니까. 냉정히 얘기하면 학원을 같이 다닌 사이. 그런 사이다. 우리는 비슷했다. 촌도시 중에서도 구도심 달동네에 살았다. 어렸을적엔 몰랐지만 크고보니 알게되었다. 둘 다 이리저리 모자라고 상처가 많았다.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했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버티는 연습을 많이 해야했다. 병우에겐 할머니가 계셨다. .. 2019.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