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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140

하얼빈 p.14 공의 노고가 컸다.....라는 천황의 말은 어디를 겨누고 있는 것인가. 유학이라는 문명한 명분으로 이은을 데려온 정치 공작의 성공을 치하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2차 한일협약 이후 조선 반도의 혼란한 정세를 놓고 통감을 꾸짖는 말인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국이 엄중할 때, 신하를 독대하는 메이지의 말은 때때로 짧고 모호했는데, 여러 의미가 겹치는 그 몇 마디를 신하들은 두려워했다. 메이지는 말과 말 사이에 적막의 공간을 설정했다. 2022. 10. 7.
은하영웅전설 10 p.47~48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다양한 관점에서 풍부한 정보를 수집해, 감정을 배제하고 분석해야만 한다. 가장 기피해야 할 것은 희망적 관측과, '육감'이라는 단어를 써서 사고를 멈추는 행위였다. p.54 책임을 다하는 것과 책임의 중압에 짓눌리는 것, 두 가지는 언제나 천칭의 양쪽 접시에서 균형을 이루었다. 머리카락 한 올의 무게만 더해져도 천칭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이때 율리안은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엷게 끓인 홍차색 머리카락 한 올이 더해진 것을 자각했다. 율리안이 이따금 의무로만 생각했던 것을 카린은 권리로 바꾸어준다. 아마도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그녀가 율리안의 발상을 전환해준 것이다. p.60 전쟁으로 치를 희생을 알면서도 목적을 달성하려는가, 아니면 그 전에 체념해 현.. 2022. 10. 4.
만다라 p.40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다. 조그만 새 한 마리를 집어넣고 키웠지.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겠는데 그동안 커서 나오질 않는구먼... 병을 깨뜨리지 않고는 도저히 꺼낼 재간이 없어. 그러나 병을 깨선 안 돼. 새를 다치게 해서두 물론 안 되구. 자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p.60~61 아까도 말했지만 이층처럼 허망한 사업도 없을 거야. 그런데 가소로운 것은 죽고 싶은 허망감에 치를 떨며 방바닥에 이마를 박았다가도 이내 그 허망감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 또 이층의 욕망에 멱살을 잡히게 된다는 점이야. 다시 허망, 그리고 욕망...... 아아 그래서 중생의 윤회는 겁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여관방을 전전하며 그 치사한 윤회를 되풀이하기 일주일 되는 .. 2022. 10. 2.
은하영웅전설 9 p.20 그딴 각오도 없는 놈은 남을 필요 없어. 3류 입체 TV 드라마야 시청자가 울먹울먹 하소연하면 죽었던 주인공도 살아나겠지.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그렇게 입맛대로 바뀌는 세상이 아니라고. 사라진 목숨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목숨이란 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p.27 죽은 자는 살아나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옛날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잃어버린 시간은 두 번 다시 되찾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보석 1조 개보다도 귀중하며, 생명은 헛되이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생전 양은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일부 종교가 영혼불멸이니 윤회전생을 주장하며 육체의 죽음을 경시하는 것에 그다운 표현법으로 반발했다. 그렇게 죽음이 별것 아.. 2022. 9. 11.
은하영웅전설 8 p.48 운명이라고 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숙명이란 정말 언짢은 말이구나. 두 가지 의미에서 인간을 모욕하는 것이지. 첫째로는 상황을 분석하는 사고를 가로막고, 둘째로는 인간 자유의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니까. 숙명의 대결이란 없단다, 율리안. 그 어떤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도 결국은 당사자가 선택한 거니 말이다. p.129 왜 싸우는가, 하는 명제는 항상 양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추구하면 할수록 전투의 무의미함만을 확인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왜, 라는 가장 중요한 논리의 핵심을 애매하게 묵혀놓은 채 감정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로 선동이다. 예로부터 종교상의 증오에서 비롯된 전쟁이 가장 격렬하고 무자비한 파괴를 초래한 이유는, 전의란 이념이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2022. 8. 21.
은하영웅전설 7 p.86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결과라 하더라도, 결과가 없는 것보다는 낫지." 동맹 정부의 고관들 중에는 오히려 중책에서 해방된 표정으로 그렇게 혼잣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 발언자는 거대하고도 압도적인 타인이 만들어준 설계도 속에서 견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순백의 캔버스를 받아 들고 기뻐하며 붓을 놀리는 자가 오히려 적은 법이다. 남에게 명령을 받고 남에게 종속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야말로 전제정치를, 전체주의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토양이다. 500년 전에 은하연방의 시민들은 다수의 자유의사로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지배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p.135~136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신에게.. 2022. 7. 31.